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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발거미
2026.08.10

찰칵. 쇠붙이가 맞물리는 냉정한 소리가 들렸을 때, 홍예준은 그것이 자신의 권총 격발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약 0.3초가 걸렸다. 그의 모든 신경과 반사 작용은 언제나 총성과 폭발음, 그리고 센티넬의 파장 변화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소리는 그 모든 위협의 범주에서 아득히 벗어난,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비현실적인 소리였다. 문이 잠기는 소리. 그것도, 밖에서. 그의 시선은 방금 전까지 안서원이 서 있던 문 쪽을 향했다. 그녀의 비명인지 뭔지 모를 괴상한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사라진 잔상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 서늘하고 깨끗한 흰 벽지 위에는… 이 집의 고고한 미적 기준을 처참히 짓밟는, 징그럽고 거대한 생명체가 버티고 서 있었다.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새까만 악몽의 파편 같은 그것.

"아, 씨발…"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경악이나 공포가 아닌, 지독한 권태와 짜증이 뒤섞인 나직한 욕설이었다. 이 상황은 대체 무엇인가. S급 센티넬을 단신으로 제압하고, 폭주하는 괴수들 사이를 유유히 거닐던 R.S.T.의 에이스, 홍예준. 그의 인생 최대의 위기가, 고작 다리 여덟 개 달린 벌레와 함께 밀폐된 자료실에 갇힌 것이라고? 그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의 미간이 흉흉하게 구겨졌다. 지금 이 순간 그를 가장 빡치게 하는 것은 눈앞의 저 혐오스러운 생명체가 아니었다. 저것을 자신에게 떠넘기고 문을 잠근 채 도망가 버린 제 연인의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안서원."

그는 잠긴 문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미 저 멀리 도망갔을 테니까. 그의 고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울어졌다. 그가 극도의 분노와 어이없음을 동시에 느낄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벽에 붙은 거대한 농발거미에게로 향했다. 그것은 마치 이 방의 새로운 주인이라도 되는 양, 미동도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젠장. 징그럽게 크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전문 분야는 어디까지나 센티넬과 괴수였다. 이런 종류의 ‘적’은 그의 제압 메뉴얼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저 혐오스러운 것이 자신의 옷에라도 스치는 끔찍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신의 결벽증이 이런 상황에서 발동한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짜증이 솟구쳤다. 어깨에 맨 숄더 홀스터의 감촉이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총을 꺼내 쏘는 건 미친 짓이다. 제아무리 사격의 신이라 한들, 이 좁은 방에서 총을 쏘면 거미의 파편과 체액이 사방으로 튈 게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꼼짝도 하지 않는 거미와 대치했다. 마치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 센티넬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그의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그 이유는 위협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불쾌감과 혐오감 때문이었다. 안서원, 이따 두고 보자. 그는 이를 갈았다.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가장 효율적이고, ‘깔끔하게’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문을 부수고 나간다. 하지만 기관의 중요 자료실 문을 파손하는 건 뒷수습이 귀찮다. 둘째, 누군가에게 연락해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R.S.T.의 에이스가 거미 때문에 구조 요청을 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그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다. 카르마나 휴고 녀석이 알게 되면 평생 놀림거리로 삼을 게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눈앞의 저것을, 자신의 손으로, 최대한 ‘흔적 없이’ 처리하는 것. 홍예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인생은 어째서 이렇게 쓸데없이 다이나믹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걸까.

그는 주변을 훑었다.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전공 서적, 구석에 세워진 대걸레, 그리고… 자신의 발. 그는 자신의 깨끗한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저걸로 저걸 밟는다고? 미친 짓이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결국 그의 시선은 책상 위, 서류를 고정하는 데 쓰는 묵직한 크리스탈 문진에 멎었다. 저거라면, 원거리에서 타격이 가능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마치 지뢰밭을 걷는 사람처럼 책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미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마치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는 책상에 다가가 크리스탈 문진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차갑고 묵직한 감촉이 손에 전해졌다. 사격 선수 시절, 메달의 무게와는 전혀 다른, 불쾌하고 성가신 무게였다.

그는 숨을 골랐다. 올림픽 결선 무대에서도 이렇게까지 집중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다, 그때는 쾌감과 승부욕이었지. 지금은 오직 이 빌어먹을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열망뿐이었다. 그는 문진을 쥔 손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정확하게 벽의 거미를 조준했다. 그의 하늘색 눈동자가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그리고 그 순간, 거미가 움직였다. 미끄러지듯 벽을 타고,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바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 씨발, 진짜!"

그의 입에서 참지 못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는 반사적으로 문진을 던졌다. 쨍그랑! 크리스탈 문진은 거미가 있던 자리를 정확히 맞췄지만, 이미 거미는 사라진 후였다. 이제 저 혐오스러운 것은 이 방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책상 밑, 혹은 서류 캐비닛 뒤. 보이지 않는 적이 보이는 적보다 더 끔찍하다는 말을, 그는 지금 이 순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안서원. 너는 오늘 정말로, 정말로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그의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