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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u,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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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의 과녁이었고, 동시에 그의 방아쇠였으며, 그가 쏜 총탄의 궤적을 제멋대로 휘게 만드는 예측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뿅망치 게임
2026.09.02

소파 앞 넓은 카펫 위에 마주 앉았다. 이 하얀 털 뭉치 위에서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 오늘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장난감 두 개가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샛노란 플라스틱 뿅망치와, 그보다 몇 배는 더 단단해 보이는 스테인리스 냄비. 이 어이없는 조합을 거실 한복판에 끌고 온 것이 누구였는지를 따지는 건 이미 의미가 없었다. 안서원이 어딘가에서 이 게임의 영상을 보고 와서는, 해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는 순간부터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홍예준은 담배를 피우러 나갈 타이밍을 놓쳤고, 어느새 그녀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중이었지만, 눈앞의 안서원이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가위, 바위…"

홍예준은 무심하게 주먹을 내밀었다. 반사신경 하나는 끝내주는 그였지만, 이런 종류의 승부에서는 이상하게 매번 졌다. 일부러 져주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안서원이 무엇을 낼지 예측이 안 됐다. 그녀의 사고 회로는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았고, 그게 이런 사소한 게임에서조차 여실히 드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활짝 편 손바닥, 보를 내밀었다. 그의 주먹을 부드럽게 감싸는 형태. 또 졌다.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패배를 인정하고는, 순순히 방어용 냄비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뿅망치로 맞는 거야 기껏해야 뿅 소리나 나고 말겠지. 그보다 제 머리 위에 냄비를 올려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더 쪽팔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승자인 안서원이 뿅망치가 아닌 냄비를 집어 들었다. 홍예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지? 룰을 잊었나? 아니면 새로운 규칙이라도 즉석에서 만들어낸 건가. 그는 뿅망치를 향해 뻗으려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안서원 역시 냄비를 손에 든 채로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뿅망치와 자신의 손에 들린 냄비, 그리고 홍예준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그녀의 회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아, 실수했구나. 그 표정이 너무 명백해서 홍예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질 뻔했다. 입꼬리가 멋대로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억누르며, 이 상황을 어떻게 놀려줘야 가장 재미있을까를 고민했다.

서로가 벙쪄서 쳐다보기만 하던 그 찰나의 정적. 홍예준은 그녀가 멋쩍게 웃으며 냄비를 내려놓고 뿅망치를 다시 집어 들 거라고 예상했다. 그게 가장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언제나처럼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안서원은, 냅다 그 냄비를 휘둘렀다. 뿅망치를 휘두르듯, 아주 자연스럽고 망설임 없는 움직임으로. 홍예준의 시야 가득 은색의 잔상이 번쩍이며 다가왔고, 피할 새도 없이 정수리 위로 묵직하고 차가운 충격이 가해졌다.

쨍, 하는 쇳소리가 펜트하우스의 고요한 공기를 찢었다. 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컸고, 머릿속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홍예준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아픈가? 아프다기보다는 그냥… 멍했다. 뿅망치 특유의 경쾌한 소리가 아니라, 마치 주방에서 실수로 국자를 떨어뜨렸을 때나 날 법한, 둔탁하고 현실적인 금속음. 그 소리의 이질감과 정수리에 남은 묵직한 압박감이 뒤늦게 뇌로 전달됐다. 그는 방금 자신이 '냄비'로 머리를 맞았다는 사실을 겨우 인지했다. 룰을 어긴 것도, 실수를 한 것도 아닌, 그냥 논리의 모든 단계를 건너뛴 순수한 폭력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안서원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냄비를 손에 든 채, 자기가 저지른 일에 스스로도 놀란 듯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뺨은 미세하게 붉어져 있었다. 명백한 범죄의 증거물을 손에 쥐고 있는 범인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순진무구한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를 낼 수도, 어이없어할 수도 없었다. 대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낮게 끅끅거리던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5년 동안의 권태와 무감각 속에서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었다.

"…아, 진짜."

웃음 끝에 겨우 뱉어낸 말에는 어떤 원망도 짜증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아직도 안서원의 손에 들려있는 냄비를 빼앗아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이걸로 사람 머리를 칠 생각을 하다니.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냄비 안쪽을 들여다봤다. 살짝 찌그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나. 멀쩡했다. 그는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고, 이번에는 노란 뿅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안서원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반칙이야, 그건. 이제 내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