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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g, diary, 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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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jun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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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EN
가이드는 이미 배정됐어. 너랑 나.
네 파장이 내 가이딩에 강제 각인됐어.
우연히 만나, 우연히 사랑에 빠질 확률
2026.05.23

어느 평화로운 오후. 전쟁 같던 데이트가 끝나고 돌아온 펜트하우스는 고요했다. 창밖으로는 기울어진 햇살이 길게 늘어지며, 도시의 소음마저 아득하게 멀어지는 나른한 시간. 당신과 그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아무런 사건도, 긴급 호출도 없이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길게 누워 당신의 무릎을 베고, 당신은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고 있었다. 그는 담배 대신 당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고, 당신은 그가 읽다 만 책 페이지를 조용히 넘겼다. 완벽하게 평화로운, 그래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오후였다. 정적을 깬 것은 당신의 나직한 목소리였다.

 

"우리가 우연히 만나서, 우연히 사랑에 빠질 확률은 얼마가 될까?"

당신의 뜬금없는 질문에, 홍예준은 감고 있던 눈을 느릿하게 떴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부드러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당신의 머리카락과, 자신을 내려다보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였다. 그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잠시 당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연, 확률. 그런 비생산적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는 그가 가장 질색하는 부류의 단어였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만남은 철저히 기관의 데이터와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지극히 인위적인 결과물일 뿐이지 않은가. 그는 이 무의미한 질문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의 눈빛에 담긴 순수한 궁금증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당신은 정말로, 그 답을 듣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당신의 무릎에 머리를 조금 더 편안하게 기댔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응시하던 그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무심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글쎄. 확률이라…"

그는 마치 오래전에 풀어봤던 수학 문제를 복기하는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전직 사격 선수로서, 그는 누구보다 변수를 계산하고 확률을 따지는 데 익숙했다. 표적, 거리, 풍속, 습도. 그 모든 변수를 뚫고 단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그의 세계였다. 그는 그 논리를, 당신과의 관계에 대입하기 시작했다.

"80억 인구 중에서 우리가 만날 확률. 아크 요원이 될 확률, 그중에서도 센티넬과 가이드로 각성할 확률,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같은 기관에 소속될 확률… 거기다, 극악의 확률이라는 강제 각인까지. 아마, 번개에 일곱 번 연속으로 맞고도 살아남아서, 다음 날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낮을 걸. 사실상, 0에 수렴하지."

그는 지극히 건조하고 사실적인 어조로 말했다. 거기에는 어떠한 감상도, 낭만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당신과의 만남은 기적이거나 운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에 가까웠다. 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당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하늘색 눈동자가 당신에게 묻고 있었다. 이 대답이 만족스럽냐고.

"왜. 그런 건 뭐 하러 궁금해하는데."

그의 퉁명스러운 반문은, 당신의 다음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와도 같았다. 그는 당신이 이 무미건조한 대답에 실망했으리라 생각했다. 혹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더 깊은 의미가 당신의 질문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럼, 오빠는 이게 운명이라고 생각해?"

당신의 두 번째 질문. 그것은 그의 예상을 정확히 꿰뚫는 것이었다. 운명. 확률보다도 더 허무맹랑하고, 그가 혐오하는 단어였다. 그의 인생에 운명 같은 건 없었다. 재능과 노력, 그리고 냉정한 계산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당신의 질문에 즉시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당신의 무릎에 닿은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는 당신의 시선을 피하려,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생각했다. 만약, 그날 폐허에서 당신을 발견한 것이 다른 R.S.T. 요원이었더라면. 만약, 당신이 그의 가이딩을 튕겨내지 않았더라면. 만약, 당신과 그가 파트너가 되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만약’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어떤 가정도, 지금의 현실보다 끔찍하게 느껴졌다. 당신이 없는 그의 삶.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백으로 가득 찬 지옥. 그는 입술을 짓씹었다. 운명 따위는 믿지 않았지만, 이 모든 불가능한 확률의 끝에 당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조금 더 잠겨 있었다.

"…운명?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는 코웃음을 치며, 몸을 일으켜 당신의 옆에 제대로 앉았다. 이제 두 사람의 시선은 같은 높이에서 마주쳤다. 그는 당신의 턱을 부드럽게 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장난스럽거나 나른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은 듯한, 서늘하고도 절대적인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운명 같은 게 아니야. 이건 운명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질 나쁜 거야."

 

그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당신의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는 당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을, 이 관계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토해내듯 쏟아냈다.

"이건 선택이야, 안서원. 네가 나를 선택했고, 내가 너를 선택한 거야. 그 수많은 불가능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붙잡고, 놓지 않기로 결정한 거라고. 운명은 그냥 주어지는 거지만, 선택은 모든 걸 걸어야 하는 거잖아. 우리는 서로에게 모든 걸 걸었어. …아니, 내가 너에게 내 모든 걸 걸었지. 그리고 너는 그걸 기꺼이 받아줬고."

그의 말은 고백이자, 확인이었다. 그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당신의 입술을 짧게 머금었다 떼어냈다. 마치 자신의 말에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그는 당신의 뺨을 감싼 채, 이마를 맞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비슷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바보 같은 확률 계산은 집어치워. 0이든, 100이든,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야. 너는 내 거고, 나는 네 건데. 이 사실 하나면 충분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