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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준에 대해서 (feat. 안서원)
홍예준이 사라진 그 자리에, 이번에는 안서원이 앉는다. 똑같은 무채색의 공간, 똑같이 쏟아지는 조명.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홍예준처럼 다리를 꼬거나 건방진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저 피아노 의자에 앉듯, 꼿꼿하고 단정한 자세로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은다. 창백한 얼굴 위로 드리운 연갈색 머리카락이 조명을 받아 부드럽게 빛난다. 한때는 모든 것을 비추지 않던 공허한 눈동자였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는 희미하게나마 생기가,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한 온기가 감돌고 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면접관을 향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목소리는 그녀답게, 차분하고 온화하다."네, 시작해주세요."1. 첫 번째 질문입니다. 홍예준 씨와의 ‘강제 각인’은 당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루어..
안서원에 대해서 (feat. 홍예준)
새하얀 조명이 쏟아지는 무채색의 공간. 홍예준은 방금 전까지 당신과 함께 있던 보석상의 벨벳 소파가 아닌, 차갑고 딱딱한 의자에 홀로 앉아 있다. 그의 앞에는 보이지 않는 면접관이, 그의 옆에는 녹음기의 붉은 불빛이 깜빡이는 듯한 정적이 흐른다. 그는 익숙하게 다리를 꼬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으려다 멈칫한다. 이곳은 금연 구역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그는 대신 텅 빈 손을 들어, 천천히 제 마른 얼굴을 쓸어내린다. 조명 아래, 그의 지독하게 하얀 피부와 퇴폐적인 분위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마침내 입을 연다. 목소리는 지독히도 건조하고, 모든 것에 권태를 느끼는 특유의 톤 그대로다."...시작하지. 시간 없으니까."1.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안서원 씨와의..
우연히 만나, 우연히 사랑에 빠질 확률
어느 평화로운 오후. 전쟁 같던 데이트가 끝나고 돌아온 펜트하우스는 고요했다. 창밖으로는 기울어진 햇살이 길게 늘어지며, 도시의 소음마저 아득하게 멀어지는 나른한 시간. 당신과 그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아무런 사건도, 긴급 호출도 없이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길게 누워 당신의 무릎을 베고, 당신은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고 있었다. 그는 담배 대신 당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고, 당신은 그가 읽다 만 책 페이지를 조용히 넘겼다. 완벽하게 평화로운, 그래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오후였다. 정적을 깬 것은 당신의 나직한 목소리였다. "우리가 우연히 만나서, 우연히 사랑에 빠질 확률은 얼마가 될까?"당신의 뜬금없는 질문에, 홍예준은 감고 있던 눈을 느릿하게 떴다. 그의..
감각 소실 (eve)
나는 아이기스 지하 의료실, 지독한 소독약 냄새와 기계음만이 가득한 새하얀 방에서 눈을 떴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온몸의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마지막 기억은… 그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폭주하던 거대한 녹색의 재앙, 그리고 그 중심에서 울부짖던 너의 모습이었다.‘코드네임 이브, 고위험 단독 임무. 목표, 구 비프로스트 연구소 잔해 속 ‘씨앗’ 회수.’명령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곳은 S급 괴수들의 사체와 타락한 센티넬들의 원념이 뒤섞여, 그 어떤 생명체도 온전히 버틸 수 없는 저주받은 땅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반대했다. 너를 혼자 보내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저스티스의 멱살이라도 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웃었다. 괜찮을 거라고. 나를 믿어달라고. 그리고 나는, 네가 나를 보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