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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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스스로 선택한, 아니, 강제로 떠맡겨진 뒤 결국 자신이 원하게 된 현실.
그녀가 자신의 옆에 서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하지만 그의 손에 감긴 그녀의 손가락이 전하는 온기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한 발, 한 발. 그의 긴 다리가 만들어내는 보폭이 평소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안광 없는 차가운 눈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빛이 그녀를 향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너만 보잖아. 언제나.
그래, 네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카락 한 올부터, 이 심장까지 전부.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마, 서원아. 다른 누가 나를 보든, 무슨 말을 하든, 그건 아무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내가 누구를 보느냐인데… 나는 너만 보잖아. 언제나.
약속
“...알았어.”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겹쳤다. 장갑 없이 맞닿은 손은, 조금 차가웠지만, 분명 살아있는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손끝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내가 네 손을 잡을게. 달콤한 꽃향기가 나기 시작하면, 내가 이 박하향 담배라도 피워서 그 냄새를 덮어주지. 그리고... 네 몸에서 식물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면,”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의 손을 조금 더 꽉 쥐었다. 그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약속이었다.“그때는, 내 심장 소리를 듣게 해줄게. 그게 네 소리보다 훨씬 시끄럽고 성가셔서, 다른 건 아무것도 못 듣게 될 거야.”
감각소실 발췌
홍예준은 눈을 떴다. 천장이 아닌, 그녀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병원복 바지의 주름. 그 위에 흩어진 자신의 애쉬 블론드 머리카락 몇 가닥. 그리고 그녀의 자유로운 손이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시야 끝에 걸렸다. 안서원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에 닿으려 하고 있었다. 홍예준은 그 움직임을 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부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다만 눈을 반쯤 감고, 그녀의 손길이 자신에게 닿기를 기다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평생을 누군가의 접촉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사람이, 지금은 이 여자의 손끝 하나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바람을 읽던 감각이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 대신 선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안서원의 체온. 안서원의 심장 소리. 안서원의 호흡. 그것들이 사라져가는 바람의 결을 대체하고 있..
그가 스스로 선택한, 아니, 강제로 떠맡겨진 뒤 결국 자신이 원하게 된 현실.
그녀가 자신의 옆에 서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하지만 그의 손에 감긴 그녀의 손가락이 전하는 온기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2026.06.11
13:58
보냄
한 발, 한 발. 그의 긴 다리가 만들어내는 보폭이 평소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녀의 160센티미터에 맞추는 걸음.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는 사실을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2026.06.11
13:56
보냄
안광 없는 차가운 눈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빛이 그녀를 향해 일렁이고 있었다.
예쁘다고 했잖아. 한 번 말한 거 두 번 안 해.
2026.06.11
12:43
보냄